에이브러햄 링컨



1863년 1월 1일 오후 2시 백악관 집무실. 그의 손은 긴장으로 떨리고 있었다. “내 평생 이 선언서에 서명하는 것보다 더 옳은 일을 한 적은 없습니다. 이 일로 내 이름과 영혼이 역사에 길이 새겨질 텐데, 서명할 때 손이 떨리면 앞으로 이 서류를 본 사람들이 내가 주저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요.”
“1863년 1월 1일부터 미합중국에 대하여 반란 상태에 있는 주 또는 어떤 주의 특정 지역에서 노예로 예속되어 있는 모든 이들은 영원히 자유의 몸이 될 것이다. 육해군 당국을 포함한 미국 행정부는 그들의 자유를 인정하고 지킬 것이며, 그들이 진정한 자유를 얻고자 노력하는 데 어떠한 제한도 가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은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3년 1월 1일자로, 위와 같이 시작되는 노예해방선언(Emancipation Proclamation)을 공표했다. 바로 전 해인 1862년 9월 22일 그는 노예해방예비선언(Preliminary Emancipation Proclamation)을 공표한 바 있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140여 년 후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정확히 말하면 흑백 혼혈인)이 탄생했다. 링컨 대통령이 서명한 노예해방선언서 사본 1부가 2005년 11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68만 8000달러에 낙찰되기도 했다. 선언서 원본은 미국립문서보관소에 보관되어 있는데, 노예해방선언을 공표하고 1년 뒤인 1864년에 전쟁 비용을 모금하기 위해 필라델피아에서 15부의 사본을 만든 것. 이러한 사실을 통해서도 우리는 노예해방선언서가 공표 당시부터 크나큰 역사적 의미를 지닌 것으로 평가받았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오하이오 주 국회의원 당선자로 링컨을 경멸했던 제임스 가필드라는 인물은 이렇게 말했다. “일리노이의 이류 변호사가 미래의 모든 세대가 기억...

[출처] 에이브러햄 링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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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를사랑합니다 | 2009/01/06 12:59 | 역사삶의문화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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